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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들과의 점심대프니 머킨 저 | 김재성 역

우상들과의 점심 -상처 입은 우상들, 돈, 섹스, 그리고 핸드백의 중요성에 관하여
대프니 머킨 지음, 김재성 옮김/뮤진트리·2만2000원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V. S. 나이폴은 속된 말로 ‘개차반’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40년 동안 생활비도 거의 주지 않고 보모 겸 비서로 부려먹었다. ‘매춘굴’을 드나들었고 아내가 유방암으로 죽어갈 때도 불륜에 탐닉했다. 주머니에 커다란 돌을 넣고 우즈 강으로 걸어들어간 버지니아 울프는, 레너드와의 결혼 생활이 “머리가 돈 두 지식인의 섹스 없는 결합”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에로틱한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친밀했다. 마릴린 먼로는 심각한 조울증에 시달렸지만 이웃들은 치료 가능한 신경증 환자로 방치했다.
오랫동안 <뉴요커>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유명인을 인터뷰했던 문화비평가이자 서평가 대프니 머킨의 에세이집 <우상들과의 점심>이 나왔다. 그가 40년에 걸쳐 <뉴요커> <뉴욕 타임스 매거진> 등에 발표한 글들을 추려 모았다. 이 책에는 우디 앨런, 트루먼 커포티, 존 업다이크, 리턴 스트레이치, 리브 울만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상처 입은 우상들…’이라는 부제처럼 모두 상처받은 이들이다. 보건소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지 2주 만에 입양되어 성적 학대에 시달렸던 마릴린 먼로, 어린 시절 가난하고 괴팍한 부목사 아버지 밑에서 종이 쪼가리에 환상세계를 그리며 놀았던 브론테 자매, 영국 왕세자비가 되었지만 무뚝뚝하고 폐쇄적인 시가 사람들과의 친화에 실패하자 사랑을 찾아 헤맸던 다이애나 스펜서….
지은이는 어릴 적 사랑이라곤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자란 ‘상처입은’ 경험에 뿌리박은 사려 깊은 시선으로 “오직 나만이 그들을 사로잡은 외로움을 알았으므로 나의 중재를 필요로 했던 무너지기 쉬운 부류”들에게 세상이 덧씌운 온갖 고정관념들을 걷어낸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지은이가 새벽 세 시마다 먹는 고칼로리 야식 탓에 남자친구로부터 “섹스할 마음이 나지 않는 지경”까지 뚱뚱해졌다는 넋두리, 오랫동안 패그해그(남성 동성애자와 친하게 지내는 여성 이성애자)였다는 이야기 등 솔직한 수다를 듣는 재미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